많은 사람들은 축복이란 자신이 원하고 바라는 것이 이뤄지고 자녀가 잘 되거나 건강을 찾고 물질을 많이 얻는 것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필요를 채우는 것이 축복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 진정한 축복이 시작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일한다고 하면서도 그 평가는 인간에게 받으려고 하는 어리석음을 보인다. 또한 인간이 절제절명의 극한 상황에 처하면 갖고 있는 신앙의 본 모습이 나온다. 하나님을 향한 신뢰도에 따라 신앙이 곤두박질치며 사라져 버리기도 하고 닥친 일을 통해 이루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대하며 찬양하는 이도 있다.

하나님의 능력은 무한하다. 이 사실을 모두가 인정하지만 자신의 처지를 감당하지 못했을때 하나님보다는 사람을, 성령의 가르침보다는 자신의 판단을 의지한다. 이는 주님을 신뢰하지 못했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지금 이 순간, 교회의 권위가 실추되고 성령의 역사를 찾아볼 수 없는 암흑기에 하나님의 능력만을 온전히 의지하는 신앙으로 살아가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믿을만한 것들이 너무 많다. 너무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다. 이런 것들이 우리가 하나님만을 의지하는데 더 높은 것을 보는데 방해가 된다. 인간의 시야로 보는 이 모든 세상의 흐름속에 우리는 더 높은 것을 보아야만 한다.

저 높은 곳에서 우리를 지켜보시는 아버지의 크나큰 섭리와 진리.

그 진리 안에 살아가는 자들은 임재의 기쁨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2011/02/20 00:00 2011/0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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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이란 무엇인가

흔히들 말한다. 복음이란 복된 소식이다. 성경 66권이 전부 복음이다. 또는 예수님의 말씀이 기록된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복음을 복음이라 한다던지. 내가 알고 있던 바로는 복음이란 하나님께서 그의 택하신 자들에게 주신 거룩한 약속이며 그 약속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것이다. 인간의 몸으로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부활하심으로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모든 이 앞에 증거하시고 자기를 믿는 모든 자들의 주인이 되시고 구원자 되신다라는 약속 그것을 복음이라고 들어왔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쉽게는 좋은 소식이라고도 생각했다.

이 책은 지금 현재의 그리스도인의 삶에 가장 필요한 복음에 대한 정확한 이해 올바른 이해를 돕고자 하는 책이다. 제목만을 봐서는 굉장히 기초적이고 쉬운 책처럼 보이고 책의 크기나 분량으로 봐서도 그렇게 보이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깊은 내용과 깨달음을 주는 책이고 다시 한번 쥐고 보도록 만드는 책인 듯하다. 나의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기본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해주는 계기가 된 듯하다

먼저 1부와 2부로 나누어져 1부에선 하나님 나라의 전체적인 통찰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이 오심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오는 결핍성의 죄들은 죽음의 권세의 해방인 구원을 통해서 회복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복음을 통한 회복이란 단순히 개인적인 구원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죄는 결국 결핍이며 결핍을 통해 고난이 오고 그 고난으로부터 해방은 관계의 회복, 병들의 회복, 경제적 빈곤, 정치적 억압까지도 치유 된다는 말하고 있다.

그동안 좁은 신학을 가졌던 한국교회내에 사회에까지 확장되는 복음의 스펙트럼을 넓히라고 충고하고 있다. 즉, 하나님은 불신자 의사를 사용해서 성령의 일반계시와 일반은총으로도 역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복음을 통해서 낙담한 자에게 새로운 삶의 용기를 주고 죄인을 회개시켜 이웃을 사랑하고, 위정자들이나 사업가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게 만들라는 것이다.

특별히 복음을 안 사람이라면 사랑의 이중적인 의미를 잘 실천한다고 말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게 된다면 이 곳에서부터 하나님의 나라를 이룰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렇게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여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받는 백성을 창조하고자 하는 것이고 그리고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 모든이의 죄가 씻어져 올바른 관계로 회복된 새 하나님의 백성을 창조하는 사건이라 말하고 있다.

또한 2부에서는 사도들이 전한 복음. 즉,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복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예수의 죽음이 우리를 위한 구원 사건이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 예수의 부활이며 이것이 바로 사도들의 선포한 복음에 항상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등장하는 이유라고 말한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약속을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인하여 지켜진 것이기에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예수의 죽음과 부활의 복음으로 선포된 이유라고 설명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예수는 그의 죽음과 부활에서 성취될 구원을 향하여 가면서 거의 하나님 나라의 선포로 그 구원을 약속했기 때문이고, 그의 사도들은 그의 죽음과 부활의 관점에서 이미 성취된 그 구원을 뒤돌아보며 선포했기 때문이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떠오른 단어 하나는 ‘아가페’ 이다. 이 단어로 많은 부분을 설명할 수 있었고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그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로록 하려 하심이라.. 요한 복음 3:16절에 나온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 나를 사랑하신다. 나를 너무 사랑하셔서 하나뿐인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매달려 죽게 하시고 그 속죄함으로 우리가 영생을 얻게 되었다. 이것이 복음이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주 이시며 죽으시고 부활하신 분이라는 것을 믿는다. 왜? 사실이니까. 덧붙여서 이 책을 보고 느낀 것이 또 하나 있다면 초신자나 신학을 공부하지 않는 사람이 읽기에는 매우 어렵지 않나 싶다. 그리고 마지막의 복음으로의 초대글은 성의 없게 느껴지기도 했다. 좀더 쉽게 많은 이들이 쉽게 접할수 있는 복음의 이야기가 담긴 책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2010/01/18 17:48 2010/01/18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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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김과 순종

섬김과 순종이라는 의미를 함께 고민해보고자 한다. 예수님의 생애를 통해 그 피와 눈물 그리고 땀으로 얼룩진 생애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신 종의 생애, 그리고 그 섬김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또 우리에게 요구하신 삶, 그리고 그 삶을 살기 위해 하나님의 요구에 순종하는 섬김을 고민해보고 싶다.

최근에 머리 속을 맴돌던 말씀은 창세기에 나오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내용의 말씀이 내 머릿속을 그리고 내 생각들을 사로잡고 있었다. 이름없이 빛도 없이 라는 책을 읽으면서 더 깊게 와닿았다. 이삭대신에 하나님께 제물로 바쳐진 양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양은 자기가 왜 태어났는지도 모르고 자라다가 어느 날 산에서 놀던 중 뿔이 수풀에 걸려서 바둥거리다가 아브라함이 다가와서 양을 잡아 죽여 번제로 드리게 된 것이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도 어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위해서 수년전에 양 한마리를 태어나게 하시고 상처없이 잘 자라게 하고 그리고 그 시점에 맞춰서 아브라함과 이삭 주변에서 서성이게 하다가 뿔이 그 곳에서 걸리게 하셨던 하나님을 생각해보면 이렇게 정확하게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도록 하셨다면 그 양 한마리는 얼마나 값지며, 우리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준비되어가는 하나님의 말씀가운데 있다면 내 삶도 얼마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이 되지 않을까?

아브라함과 이삭과 양에게 있어서 공통점이 한가지 있는데 이삭도 그렇고 양도 그렇고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께서 조금씩 조금씩 준비하여 맞춰나가고 계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의 공통점은 죽음이 다가오는 그 순간까지 이유를 묻지 않는 다는 것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순종은 내가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그 길을 묵묵히 가는 것이고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손과 발로 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왜 내가 한국땅에 태어났고 왜 살아가는 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이 나를 태어나게 했고 하나님을 믿게 했고, 그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리에 있게 했고 그리고 하나님이 나를 이끌어 가심을 믿고 있다면 무조건 섬기고 순종해야 한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나를 하나님의 은혜안에서 섬김의 도리를 다 할 수 밖에 없는 자리로 부르셨다면 그것이 우리의 소명이라면, 구속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하며 헌신의 소명을 다하는 내가 되어야 겠고, 또 그 섬김 가운데 낮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며, 충성을 다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완수해야만 한다. 또 어느 누구 알아주지 않더라도 세상의 존귀와 영광을 바라지 말고 하나님께서 바라보실 것을 기대하며 그러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2010/01/18 17:43 2010/01/18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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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 최선을 다한 섬김

구원 받은 우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선 아니 진정한 그리스도인 이라면 우리의 시간을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을 사는 사람이어야 한다. 1분 1초까지 아껴가면서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생애의 시작부터 마지막 순간에 이르기까지 피와 눈물로 얼룩진 종의 생애를 살았다. 이렇게 우리 앞에 희생의 삶, 섬김의 삶을 살고 죽어가는 모습을 보여주셨고, 그것이 우리에게만 요구된 것이 아니라 이미 예수님께 주어졌던 요구이고, 그리고 예수님께서 몸소 이루셨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섬기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많이 묵상해야 한다.

그렇게 묵상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큰 사랑, 그 한 없는 희생을 생각하면, 그분의 공로로 구원을 받은 우리가 우리의 모든 것을 드려서 하나님을 섬길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고, 또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 인지를 알고, 그분의 십자가 고난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달았다면, 하나님의 강권 때문에 절대로 나태한 삶을 유지할 수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생애의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섬김의 태도를 잃지 않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어느 순간 어느 자리에 있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의 은혜로 불러 주신 것이 이 섬김의 자리에 세워 주시기 위함이었다는 소명의식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 땅에 살아있는 한,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있어서 은퇴란 없다. 하나님을 위해 살아간다는 것은 숨쉬는 것만큼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이 하루는 우리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위한 최선을 요구하는 날이다. 그리고 이시간 하나님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자리에 서 있다면 그것은 그 자체로 말할 수 없는 특권이다.

이 특권을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할 두가지는 첫째, 이 세상은 허무하고 철저하게 소망이 없는 곳이라는 것이다. 잠시 머물다 지나갈 나그네 길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 앞에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비록 십자가에서 구원을 얻기는 했지만, 하나님을 섬기며 살 수 있는 기회는 허락받지 못했던 행악자를 생각하면서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을, 오늘 또 하루의 시간이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하루의 시간이 주어졌다는 사실에 또 한번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섬길 때 우리의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섬기게 된다 할 지라도, 단지 우리는 모든 존귀, 영광과 권세를 하나님께만 돌리며 살아야할 존재이기에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하나님만 사랑하며 섬긴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어둔 세상에서 빛나는 샛별처럼 여겨주실 것이다.

2010/01/18 17:41 2010/01/18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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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향력

2010/01/18 17:24

영향력

작년에도 그랬지만 올해도 마찬가지로 내 머릿속엔 영향력이라는 단어가 깊게 자리잡고 있다. 그냥 단지 가벼운 영향력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영향력이라는 것은 목소리가 크다고 해서 또는 몸집이 크고 인상이 강해서 영향력이 커지는 것은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영향력은 강하게 말하지 않아도 설득하려고 하지 않아도 가만히 있는 모습만으로도 나를 통해 우리를 통해 예수님을 볼 수 있다면 그것이 정말 강한 영향력이라고 생각한다.

맥스웰 선교사의 영향력

인도에 맥스웰이라는 정말 신실하신 선교사님이 있었다고 한다. 말씀앞에 서있는 그리스도를 닮은 그러한 헌신적인 분이셨다. 그래서 그 분이 가졌던 영향력은 대단했다고 한다. 인도의 맥스웰 선교사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책에서 보게 되었다. 맥스웰 선교사가 인도 지방의 한 언어를 배우기 위해 한 흰두교도에게 언어를 가르쳐 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흰두교도인은 선교사의 여러번의 걸친 요청을 계속 거절하였다. 거절한 이유인즉슨 선교사님에게 사례비를 받고 언어를 가르쳐 준다 하더라도 선교사님과 같이 있게 된다는 것만으로도 기독교인이 되고 말 것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거절했다고 한다. 그래서 선교사님이 전도하지 않을테니 언어만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으나 선교사님과 같이 있으면서 기독교인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라고 말하고는 떠나버렸다고 한다.

정말 멋진 선교사님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선교사님의 삶에 너무 강력한 영향력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러한 영향력이 넘치는 모습을 가진 그리스도인, 그리고 청년부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모습을 가진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믿는 바를 삶으로 보증함으로 영향력이 주변으로 전염되도록 해야한다.

말씀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염병이라 천하에 퍼진 유대인을 다 소요케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 (사도행전 24:5)
우리는 이 사람이 온 세계에 있는 유대인들을 선동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나사렛 이단의 두목입니다. (사도행전 24:5 쉬운성경)

마치며...

초대교회 성도들의 모습은 위와 같지 않았을까. 특히 바울은 염병 즉, 전영병이라고 까지 표현했을 정도다. 바울과 같이 있으면 전염되어 버린다는 뜻이다. 나에게 전염당하는, 우리 청년들에게 전염당하는 사람들이 넘쳐나길 희망해본다.

2010/01/18 17:24 2010/01/18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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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라는 것은...

예배라는 것은 먼저 경외. 존경의 의미로서의 예배. 몸을 굽히다 엎드리다 입맞추다 라는 문자적의미로서의 예배 또는 섬긴다 라는 뜻을 담고 있다. 또 예배는 하나님의 존재를 깨달은 인간이 응답하고 반응하는 마음가짐과 몸짓을 뜻한다. 예배는 우리의 존재를 하나님 앞에 굴복하는 것이고 예배는 거룩함으로 구별됨으로 우리의 양심을 깨우는 것이고, 그분의 진리로 우리의 마음을 살찌우는 것이며 나아가 그분의 아름다움으로 우리의 상상을 정화시키는 것이다. 또한 그분의 사랑으로 우리의 심령을 활짝 여는 것이며 그 분의 목적에 우리 의지를 내려 놓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예배다.

예배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명령이며 예배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최상의 방법이다. 예배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예배자를 찾으시기 때문이다.

예배는 마음으로 삶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문자적으로 생각으로만 아는 예배는 우선적인 것이 아니었다. 모태신앙을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진 공통점 이겠지만 예배, 그리고 신앙에 대해 절박함이 없고 주일 아니 예배라는 것은 나에게 있어 언제나 일상생활 처럼 반복되는 하나의 행사에 불과하다고 표현해도 틀리지 않을듯 싶다. 예배가 시작하가 20분 아니 30분 전부터 하나님과의 만남을 기대하며 혹은 매우 두려워 떨며 예배당에 나와 무릎으로 기도로 묵상으로 준비해본 기억이 없다시피 하다. 예배하는 자의 자세는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그 자세라는 것이 기타나 피아노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또한 예배중에 손을 올리든지 내리든지 자리에서 일어나든지 뛰고 있던지 엎드려 있던지 무릎을 꿇던지 앉아 있던지 눈을 감던지 뜨던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어떤 화려한 영상으로 가사를 띄운다던지 하는 것도 크나큰 비중이 없다. 이 모든 것이 예배자의 마음에 있는 것을 하나님 앞에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에 불과하다. 이 모든 얘배를 위한 도구들, 수단과 방법 등은 나름대로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예배에 있어서 중요한 것을 예배자의 마음 자세이다. 예배를 드리는 자는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에 집중해야 한다. 예배란 하나님과의 살아있는 관계가 형성되지 않고서는 실제로 이루어질 수 없다. 예배란 단순히 찬송가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실제로 동행하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또한 예배가 예배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도 바르게 되어있어야 한다. 예배란 예배당에서만 드려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와 관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참된 예배

또한 참된 예배라는 것에 대해서도 고민해보게 된다. 예배라는 것이 하나님의 피조물인 우리가 존경해야할 존재인 경외해야할 존재인 최상의 존재 하나님 앞에 엎으려 절하며 또 그에 합당한 영광을 드리며, 존경과 경의를 표하면서 엎드린다 라고 생각할때 예배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드리는 것이라고 본다. 설교자에게 또는 찬양팀에게 존경을 드리기 위해 모이는 것이 절대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존경을 드리기 위해 모인다. 설교와 찬양은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내 주라고 인정하고 그 인정함을 드러내도록 돕는 도구이며 그러한 마음을 갖도록 돕는 수단이어야만 한다. 예배의 주인공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장 아름답다고 기뻐하실 만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우리의 의무가 아닐까 한다.

우리가 드려야 하는 예배는 단지 하나님의 은혜만을 구하는 예배가 아니라 절기와 의미를 새기는 그러한 예배가 아니라 예수님이라는 중보자를 통해서 나같은 죄인이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그리고 그 예배를 통해서 우리의 죄를 뉘우치며 그 예배에 부어지는 성령의 은혜를 통해서 진리를 붙들고 세상을 이기며 살아갈 은혜를 받아야 한다. 이러한 특권을 가졌다는 사실에도 감사한다. 예배를 갈급하며 예배를 그리워할 줄 알아야 한다.

당신은 하나님을 예배합니까? 예배가 당신에게 있어서 우선적인 것입니까?

나에게 있어 최우선의 것은 예배이며 그 예배시간에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영과 진리로 예배한다.

2010/01/18 17:15 2010/01/18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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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제와 억압

억제하다 그리고 억압하다.

나는 지금 나를 억압하고 있는 걸까? 억제하고 있는걸까.. 고민을 마무리 짓지는 못했지만 억압이라는 표현이 현재의 나에게 적절한 것 같다.

1퍼센트의 마음

마음속에 남아 있는 1퍼센트의 정도가 마음속에 밤하늘에 밝게 빛나는 별처럼 부각된다. 그리고 그 1퍼센트를 발견했다는 사실에 침체되기도 한다. 또한 내 마음속 깊이 가끔 생각하는 것들이 드러나면 억누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나쁜 감정이라 해도 그러한 작은 감정이 내가 그리스도인 답지 못하다 해서 죄가 있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각자의 감정에 직면하는 것이 두려워 무의미한 방법으로 대하곤 한다.

억압으로 인해...

이러한 모든 과정에서 억압이라는 방법을 택했다. 정직하지 못한 방법인 것 같다. 윤리적으로? 정서적으로? 신앙적으로? 이런 걸 생각해보지 않더라도 억압이라는 방법에는 큰 문제가 있기 때문에 정직하지 못한 방법인 것이다. 억압이라는 것이 나에게 시한폭탄과 같은걸 마음속에 간직하도록 해버렸다.

결국 여러가지 반응으로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관계의 파괴, 신체의 파괴, 건강의 파괴.. 등등.. 이 억압때문에 내가 치루어야 할 대가가 내가 가질수 있는 생산적이며 좋은 삶에 있어서 엄청난 세월을 잃게 할 것 같다. 당연하리라 본다.

욕조에 물이 가득 담겨 있을 때 풍선을 억지로 밀어넣는다고 해서 넣어지는 게 아니다 금방 다시 튀어오르게 되고 물속에 집어 넣기 위해 여간 힘든게 아니다. 내 얼굴에 폭발할 듯한 표정이 드러나고, 또한 내 얼굴에 그런 모습을 보이게 될까봐 억지로 웃으며 감정을 억누르는 일은 내 에너지는 고갈시키고 있다.

외적인 뿐만 아니라 내 신앙에도..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는 힘도 약해져가고 있다. 정서적으로 신앙적으로의 치유의 속도도 더디어 지고 있다.

언젠가는 재적응의 시기로

그래도 아직 희망적인 것은 이러한 시간이 지난 후에 언젠가는 언젠가는 재적응의 시기로 들어갈 것이라 생각한다.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감정들은 모두 버려버리고 자연스럽게 살아야겠다. 억압하려고 하지말고.. 내 감정을 그냥 맞닥뜨려야 할 것이다.. 솔직해지자.

말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28

2010/01/12 10:35 2010/01/12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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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배워야 하는 감정입니다.

그것은 긴장이요 성취입니다.

그것은 깊은 동경이요 적개심입니다.

그것은 즐거움이요 아픔입니다.

한쪽이 없으면 다른 한쪽도 없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행복은 사랑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이것은 배워야 하는 진실입니다.

고통 역시 사랑의 한 부분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신비요,

아름다움이며 동시에 사랑의 멍에입니다.

사랑은 배워야 하는 감정입니다.


 

윌터 트로비쉬가 지은 "사랑은 배워야 할 감정입니다". 라는 책의 첫부분 글입니다. 문득 생각나서 이렇게 옮겨 적어 봅니다.

2009/12/19 23:37 2009/12/19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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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News

2009/01/08 03:36
책을 샀다.
어렸을 때는 책을 참 즐겨 읽는 편이었는데 나이가 들어갈 수록 머리가 커져갈 수록 책을 읽는 습관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취미의 문제도 있겠다. 컴퓨터에 빠지기 시작하면서 부터 책을 읽지 않게 된것 아닌가 싶다. 어렸을 땐 책만 읽으면서 하루종일 보내기도 했었는데..
 
아무튼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기 시작해서 무작정 책을 왕창 구입했다. 쌓아두고 책을 읽어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예전부터 해왔기에..
조금 심한가 싶기도 하지만.. 총 11권이나 되는 책을 구입했다.
AW.토저의 시리즈를 왕창 사보려했지만.. 어찌나 비싸던지..
그리고 너무 심오해서 금방 지쳐버릴것 같다는 생각에
쉽게 접하고 쉽게 읽어지는 전병욱 목사님의 책을 시리즈로 구입했다.
 
자려고 하다가 책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금 이 시간까지 읽고 기억에 남는 내용들을 여기에 적어본다.
읽은 책은 굿뉴스 이다.
 
안그래도 이번 월요주제발표때는 어떤 내용을 할까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 갈팡 질팡 하던 고민을 확실하게 결정했다.
창조론에 대해서 해볼까 한다. 주제에서 갑자기 벗어났군..
 
우리의 신앙은 파도타기 같은 신앙이어야 한다. 말하자면 파도를 즐기자는 것이다. 우리의 힘으로 파도를 막아내고 이겨내는 것은 불가능 하다. 떡버티고 서서 파도를 이겨보겠다고 하다가 심하게 다칠 수도 있다. 이런걸 기독교 신앙이라고 보기는 힘들지 않을까..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또는 만들어주신 환경에 적절히 반응하는것, 적절히 적응하는 것 이것이 기독교 신앙이다. 젊은이는 젊은이답게 어른은 어른답게 아이는 아이답게..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하나님께서 이 모든 만물을 합리적으로 만드셨기에 기독교 신앙을 가진 자들을 그 합리적인 법칙에 맞춰서 그 안에서 삶을 잘 살면 되는 것이다. 파도의 환경에서.
 
하나님께서 이 모든 만물을 합리적으로 계획적으로 만드셨다는 것이 믿기 어려운가.. 사실 나는 쉽게 믿는 성격이 아니다. 고집이 세고 못된 성격을 가졌기에 남의 말을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걸리거나 또는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성격을 가졌다.
 
어느날 갑자기 한번 곰곰히 생각해보게 되었다. 세상의 과학자들은 "우연히" 모든 것이 생겼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보자.
 
아무것도 없는 빈공간에 어느날 갑자기 물체가 생겨서 어느날 갑자기 뻥터졌다 (빅뱅). 그리고 어느날 갑자기 우주가 생성되었다. 그리고 우연히 지구와 태양의 거리가 현재와 같이 되었다. (만약 1km의 거리에 오차가 있었다면 현재 지구의 모습은 불에 타고 있거나 아니면 꽁꽁 얼어있을 것이다. 지금은 절묘한 거리이기에 사람이 살수 있다) 그리고 어느날 갑자기 아무것도 없던 땅에서 미생물이 생겨나고 그것들이 우연히~ 돌연변이가 발생하여 여러가지 생물이 생겨나고 또한 우연히 그 생물들이 오랜시간을 거쳐 변이하면서 사람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이게 과연 이해가 되는가. 쉽게 설명해보자
어느날 땅바닥에서 흙먼지가 일어나더니 노트북이 생겨났다. 라고 말하면 그걸 믿을수 있는가? 누가 가져다 놓았다고 말하지 않을까?
미국 러시모어 산에 있는 대통령들의 얼굴들을 보면서 "아! 바람의 침식작용에 의해 생겨났구나" 라고 말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누군지는 몰라도 정말 열심히 만들었구나. 라고 말하게 되는것이 정상아닌가.
 
조금만 합리적으로 생각을 해보자. 우연히 이루어졌을까?
이 세상은 합리적으로 계획되어 치밀하게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하나님의 피조물인 것이다.
2009/01/08 03:36 2009/01/08 03:36
Posted by 마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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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에베소서 4:24-27)


진리와 진실, 위의 말씀에서 강조하는 것 중의 하나이다.


많은 사람들은 정직하라고 말한다 솔직해야 하며 진실하라고..

한가지 중요한 것이 있는데 감정에 대해서 정직해야 하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나타내어 죄를 짓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누군가와 안좋은 일이 있었다면,

말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음으로

상대방에게 죄책감을 느끼도록 하기보다는,

내가 감정이 상했었고 그 상한 감정 때문에 화가 나 있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렇게 하기 위해선 먼저 나 자신에게 정직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내 상한감정을 유발한

더 깊은 감정, 즉 불안감과 자아 불신감 등에 직면해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감정들에 대해서 정직해지지 못한다면,

내 모든 감정을 억눌러 버리고 우울해질 수도 있다.

또는 정말 심하게 상대에게 싸움을 걸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진실하게 정직하게 내 감정을 고백할 수 있다면,

그리고 내 감정을 말하고 함께 기도할 수 있다면,

그 때는 나 자신과 상대를 더욱 잘 알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나도 성숙하고 상대도 성숙해지고

서로의 관계도 공동체의 관계도 성숙해 질 수 있을 것이다.

 

『감정은 하나님의 선물 입니다』 IVP

                                   필립 스위하트 저 

 

위의 책에서 발췌해서 약간 편집 :)

2007/12/12 14:19 2007/12/12 14:19
Posted by 마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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